AI 도입 이후 스타트업 조직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한 사람이 처리하는 업무량과 판단의 범위가 크게 늘었지만, 그 판단 기준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에게만 쌓인다는 점이다. 리버스마운틴 김경민 대표는 사내 1대1 대화 AI 솔루션 ‘오블릿’을 운영하며 여러 조직에서 이런 패턴을 확인했다고 전한다. 문제는 그 개인이 조직을 떠나는 순간 드러난다.

문서와 프롬프트로는 전달되지 않는 것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AI 덕분에 직원 한 명이 서너 명의 몫을 해냈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퇴사하자 업무 전체가 멈췄습니다. 인수인계 파일은 받았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인수인계 문서와 저장된 프롬프트가 남아 있어도, 그 안에는 왜 특정 선택을 했고 무엇을 버렸는지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일찍이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경영학자 노나카 이쿠지로 역시 지식전환 4단계 이론을 통해 암묵지가 조직 지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AI가 업무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지금, 이 암묵지 이전의 문제는 더 커진 규모로 조직 앞에 다시 놓여 있다.
퇴사 면담이 아니라 평소 대화에서 끌어내야 한다
퇴사 직전 인수인계 면담만으로는 판단 기준을 복원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된다. 판단은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어서, 퇴사를 앞둔 짧은 면담으로는 그 맥락을 되짚기 힘들다. 대신 평소 1대1 대화에서 세 가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제시된다. 버린 선택지를 묻는 것, 잘된 결과가 나온 이유를 묻는 것, 그 판단이 일회성인지 다음 업무에도 재사용할 수 있는 기준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관리 업무 안에서 이뤄진다. 팀원 다섯 명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에 스무 번 이상의 1대1 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제시된 수치다. 예를 들어 경쟁사 분석 업무에서 열 곳을 검토해 다섯 곳만 최종 후보로 남겼다면, 그 과정에서 매출 규모가 10배 이상 차이 나는 기업 다섯 곳을 제외했다는 판단 기준 자체가 기록할 대상이 된다.

사람이 아닌 업무 단위로 남기는 기록
대화에서 확인한 판단은 사람이 아니라 업무 단위로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황·기준·범위’ 세 줄로 기록하면 특정 담당자가 바뀌어도 해당 업무의 판단 근거는 그대로 남는다. 이렇게 쌓인 기록은 분기별로 검토를 거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판단 기준이 있다면 팀 매뉴얼로 승격된다. 개인의 경험이 조직의 자산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AI가 업무 처리량을 늘릴수록 개인에게 쌓이는 판단의 총량도 함께 커진다는 점은 이 흐름의 출발점이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속도는 AI가 대신할 수 있지만, 그 결과물 뒤에 있는 선택과 배제의 기준은 여전히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조직이 이 기준을 문서가 아니라 평소의 대화 구조 안에 심어두는 것, AI 활용 조직들이 마주한 다음 과제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