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D 애니메이션 제작 시장이 한정된 시장 규모와 오르지 않는 제작 단가라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생성형 AI를 제작 공정에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업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같은 인력과 시간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제작사들이 사람이 정밀하게 다뤄야 하는 영역은 제작자가 맡고,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드는 작업은 AI로 대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 소재 콘텐츠테크 기업 새로핌은 이런 흐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대현 대표가 이끄는 새로핌은 자체 3D 제작 역량에 생성형 AI를 결합한 시스템 ‘ASC(AI Studio Creator)’를 개발해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하고 있다.
렌더링 자동화로 효율 30% 이상
ASC가 가장 적극적으로 쓰이는 공정은 3D로 만든 캐릭터와 배경, 조명 등의 정보를 계산해 최종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렌더링’이다. 이 대표는 “현재 ASC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제작 공정은 3D로 만든 캐릭터와 배경, 조명 등의 정보를 계산해 최종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렌더링’입니다. 실제 프로젝트에 ASC를 활용해 본 결과, 비용과 제작 기간을 종합했을 때 작업 효율이 30% 이상 높아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새로핌은 창업 초기 안정적인 매출과 제작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아웃소싱에 집중하며 경험을 쌓았다. 이 대표는 “창업 초기에는 안정적인 매출과 제작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아웃소싱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넷플릭스나 일본 유명 콘텐츠 제작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국내에서는 더핑크퐁컴퍼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함께하면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라고 전했다.

현장 실무에서 나온 기술, 자체 IP로 이어져
이 대표는 ASC가 연구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나온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새로핌은 국내외 유명 콘텐츠 IP 기업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3D 제작 역량을 쌓아왔습니다. ASC 역시 그저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라 현장 실무자들이 직접 제작 과정에서 겪은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한 시스템입니다. 무엇보다 실제 프로젝트에 ASC를 활용한 결과 후속 계약과 매출 등 실질적인 성과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새로핌은 이 시스템을 바탕으로 아웃소싱에서 벗어나 자체 콘텐츠 IP 제작으로 사업 방향을 넓히고 있다. 현재 제작 중인 대표작은 장편 애니메이션 〈휴봇〉이다. 이 대표는 “현재 제작 중인 대표 작품은 장편 애니메이션 〈휴봇〉입니다. AI를 탑재한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그린 SF 어드벤처로, AI 시대에 인간과 기술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2027년 하반기 이후 공개를 목표로 제작 중입니다”라고 밝혔다.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한 SF 액션 시리즈 〈엘리스〉는 2028년 하반기에서 2029년 상반기 공개를 목표로 함께 개발되고 있다.

일본·북미 겨냥한 글로벌 확장 계획
새로핌은 본사를 제주로 옮기고 이를 해외 사업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스타트업 코리아 한일 제주스타트업 펀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이 같은 확장에 속도가 붙었다. 이 펀드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세븐스타파트너스가 공동운용사로 참여해 조성한 101억 원 규모 펀드로, 새로핌이 첫 투자기업으로 선정됐다. 회사는 이번 투자를 바탕으로 ASC 고도화와 연구인력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이 대표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에 머물지 않고 그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자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핌은 일본 시장을 우선 공략한 뒤 북미 시장으로 진출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향후에는 ASC를 애니메이션 제작을 넘어 게임, 웹툰, 숏폼, VR 등으로 확장하고 외부 제작사와 창작자가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사람과 AI의 역할 분리가 관건
업계에서는 AI 활용 확대가 곧 인간 창작자의 역할 축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관건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AI의 장점은 최대한 활용하되 작품의 방향과 이야기는 사람이 만들어가야 한다. ASC를 미래 콘텐츠 제작 방식의 하나로 성장시키는 동시에 새로핌만의 콘텐츠 IP로 일본과 북미 등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겠다”고 말했다.
새로핌의 사례는 제작 단가 인상이 쉽지 않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사람이 맡아야 할 영역과 AI가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을 분리하는 방식이 업계 전반의 생산성 문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경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