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조업 현장의 인력난은 더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경제인협회(FKI)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지역 중소기업의 51.4%가 인력난을 겪고 있으며, 제조업만 놓고 보면 그 비율은 60.8%까지 올라간다. 여기에 올해 1월부터 베트남 최저임금이 7.2% 인상되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생산기지를 둔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표 입력, 원가 분석, 월말 결산 같은 반복 사무 업무를 AI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ERP를 바꾸지 않고 활용도를 높이는 접근
지난해 설립된 트리니오(Trinio)는 강태욱(Tony Kang) 대표와 이창민(Chris Lee) 사업총괄이 공동창업한 팀으로, 제조 현장의 반복 사무 업무를 자동화하는 솔루션 ‘D.A.N.A Work’를 개발했다. 이 솔루션은 기존 ERP와 MES를 교체하는 대신, 사용자의 업무 맥락을 더해 AI가 반복 업무를 대신 수행하도록 연동하는 구조다. 1억 원 이상이 드는 ERP 신규 도입 비용을 감안하면,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AI만 얹는 방식이 중소 제조업체에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된다.
강태욱 대표는 “자금 여력이 충분한 기업은 개발자와 컨설턴트 등 외부 전문 인력을 높은 비용으로 고용해 약 1년 동안 AI 전환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트리니오의 솔루션은 중소제조기업도 합리적인 비용으로 1개월 안에 10건의 사무 업무를 AI로 자동화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예산 편성 작업은 3주 이상 걸리던 것이 3시간으로, 전표 입력과 보고서 작성은 하루 2시간에서 3분 이내로 단축된 사례가 있다.
데이터 노출을 최소화하는 설계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보안 구조도 핵심 설계 요소다. D.A.N.A Work는 ISA-95 스키마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자체 개발한 ML 모델로 데이터를 매핑한다. 여기에 가드레일과 권한 관리 레이어를 더해 접근을 제한하는데, 실제 데이터는 국내에 보관하고 스키마 정보만 LLM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노출을 최소화한다.
이창민 사업총괄은 “대부분의 AI 회사는 모든 데이터를 받은 뒤 나중에 보안을 적용하지만, 트리니오는 데이터 노출 0에서 시작합니다. 스키마 정보만 LLM에 전달하고 실제 데이터는 국내에 머무르는 구조입니다”라고 설명했다. 800개 제품을 주문받은 상황을 가정해도, 이런 구조 안에서 AI가 전표와 보고서 작업을 대신 처리하는 흐름은 유지된다.

한국-베트남 공급망과 로봇·피지컬 AI를 바라보는 시선
트리니오는 국내를 넘어 베트남 공장으로도 시선을 넓히고 있다. 강태욱 대표는 지난 4월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경제사절단에 합류해 현지 행사에 참여했고, 같은 달 중소벤처기업부 초기창업패키지에 선정됐다. 6월에는 네이버클라우드에 등록했으며, 지난 7월 1일에는 ‘2026 AI 자율제조혁신 콘퍼런스 인 부산’ 전시 부스에서 자사 솔루션을 소개했다.
이 같은 확장의 배경에는 사무 업무 자동화가 결국 운영 의사결정 데이터를 쌓는 과정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창민 사업총괄은 “로봇과 피지컬 AI가 발전해도 그 로봇에게 무엇을, 언제, 얼마나 만들지 알려주는 운영 레이어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사무 업무 자동화로 진입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장의 운영 맥락이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쌓입니다. 로봇이 손이라면, 저희는 그 손을 움직이는 두뇌를 만드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강태욱 대표는 “정부 지원금이 있어야 도입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지원금이 없어도 고객사가 스스로 비용을 지불하고 선택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인력난과 데이터 미활용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함께 안고 있는 중소 제조업 섹터에서, 사무 업무 자동화가 실제 유료 고객 확보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