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주택 공급량이나 개발이익 같은 양적 지표에서, 청년이 상승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의 개수로 옮겨가고 있다. 미래학자이자 스타벤처스 대표이사인 문지은 박사는 최근 기고문에서 한강과 용산을 청년·스타트업의 '기회 인프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도시의 공정성은 같은 주소를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취업·창업·투자·글로벌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상승 이동의 사다리를 얼마나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핵심 논지다.
문 박사는 서울의 한강과 용산이 업무지구와 국제교류 기능을 잇는 입지적 이점을 갖고 있음에도, 그 잠재력이 여전히 부동산 가치 중심으로만 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두 공간을 공공자산이자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액셀러레이터로 작동할 수 있는 거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각 대신 장기임대·기간형 사용권
기고문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공공소유 유지를 전제로 한 장기임대, 기간형 사용권, 민관협력 방식이다. 핵심 공공부지를 매각해 단기 개발수익을 얻기보다, 청년과 스타트업에게 기회를 여는 장기적 '옵션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용산에는 입주 기간을 2~3년으로 정한 기간제 주거를 비롯해, 공유 연구·제작시설, 투자·오픈이노베이션 허브, 글로벌 창업 게이트웨이를 조성하자는 구체적 제안이 담겼다.

공유 연구·제작시설은 인공지능과 로봇, 바이오, 콘텐츠 분야 기업이 초기 비용 부담 없이 실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상됐다. 투자·오픈이노베이션 허브는 창업자와 벤처캐피털·액셀러레이터, 대기업, 대학, 연구기관이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이는 도시 자체가 액셀러레이터로 작동해야 한다는 기고문의 논지와 맞닿아 있다.
글로벌 창업 게이트웨이, 스테이션F 사례
글로벌 창업 게이트웨이는 해외 창업자·연구자·투자자가 국내에 정착해 사업화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기능으로 제시됐다. 문 박사는 이 구상의 참고 사례로 프랑스 파리의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를 들었다. 스테이션F는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지원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KOSME) 역시 스테이션F에서 국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국 창업가들의 참여를 지원해 온 바 있다.

기고문은 한강 역시 단순한 자연경관이나 여가 공간을 넘어, 문화·산업 기회와 연결된 도시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짚는다. 이는 런던 나이츠브리지, 뉴욕 맨해튼, 도쿄 미나토구, 홍콩 피크 같은 세계 주요 도시의 고밀 입지가 자산가치뿐 아니라 기회 접근성의 상징으로 기능해 온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공급량에서 사다리 개수로
문 박사가 제안하는 도시정책의 성과 지표 전환은 명확하다. 몇 채를 공급했는가가 아니라 몇 개의 사다리를 만들었는가로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강과 용산이라는 두 공간에 국한된 제안이라기보다, 도시 자산을 부동산 가치가 아닌 기회 접근성으로 재평가하자는 더 넓은 관점의 문제 제기에 가깝다.
이 기고문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도시가 누구에게 어떤 사다리를 놓아줄 것인가로 수렴한다. 공공부지의 가치를 단기 개발이익이 아닌 장기 옵션 가치로 재는 발상, 그리고 도시 자체를 액셀러레이터로 재설계하자는 제안은 서울의 다른 공공자산에도 적용될 수 있는 프레임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