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에 AI를 쓰는 근로자는 51.8%로 절반을 넘었지만, AI로 시간을 아낀 만큼 더 생산했는지를 보면 평균적으로는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다. 오삼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장이 내놓은 이 분석은, 'AI에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를 다룬 이날 발표들이 가리킨 병목의 한 갈래다. 이 컨퍼런스에서는 연사 여덟 명이 통제·위임·산업 자율화·생산성·교육의 관점에서 초자율 사회의 조건, 즉 AI에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지킬지를 논의했다.
발표는 기조연설과 특별강연, 'Next AX Industry' 세션, '지능의 연결과 미래' 세션, '지능의 인문학'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연사로는 이광형 전 KAIST 총장, 마이크 매시미노 전 NASA 우주비행사, 정유인 SK하이닉스 부사장,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김정환 위븐 대표, 오삼일 팀장, 임창환 한양대 뇌공학연구센터장, 김남주 연세대 AI에듀테크센터장이 올랐다.
통제와 위임, 두 갈래의 출발점

기조연설에 나선 이광형 전 KAIST 총장은 매슬로 욕구설에 빗대 AI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그는 AI의 위험을 자의식이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눴다. 최근 은행 해킹처럼 AI가 악용되는 일은 AI의 의도가 아니라 AI를 이용한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자의식이 없다면 그것은 기계의 실수”라고 했다. 관리 방식으로는 “불과 원자력, 자동차, 칼을 관리하듯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자기 개선은 이미 기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도 말했다. 제안은 AI의 욕구 5단계 중 마지막인 자기 개선 단계를 막고 나머지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AI와 타협할 때 다섯 번째는 막고 나머지는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강대국이 합의해 IAEA 같은 국제기구를 세우자는 구상도 내놨다.

특별강연에 나선 마이크 매시미노 전 NASA 우주비행사는 통제를 말한 기조연설과 반대편에서 AI에 맡기는 쪽의 경험을 들려줬다. 조종간이 없는 고도 자동화 우주선 스페이스X 드래곤이 사례로 나왔고, 우주왕복선과 대비됐다. 조종을 AI에 넘기자 우주비행은 더 안전해졌고, 사람은 관찰 등 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매시미노는 “처음엔 통제권을 내주는 게 걱정됐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조종하다 사고를 낼 가능성이 기술을 믿을 때보다 더 컸다”고 말했다. 다만 “AI가 그런 해법을 떠올릴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산업 현장: 자율 팹과 휴머노이드의 하드웨어 병목

Next AX Industry 세션에서 정유인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스마트 팩토리를 5단계로 나눠 현재 SK하이닉스가 레벨4에 있다고 밝혔다. 레벨5 자율 팹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공장으로, 비전으로 제시됐다. 현장에서는 수만 개의 AI 모델이 수억 장의 검사 이미지를 365일 판독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장비 정비다. 협동로봇을 활용한 정비 무인화를 장비·로봇 제조사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정 부사장은 “휴머노이드는 춤추고 텀블링하는 건 잘하지만, 손으로 하는 미세 작업은 아직 안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그래서 로보틱스에서 병목은 하드웨어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짚었다. 에이로봇은 휴머노이드 '앨리스'를 개발한 회사다. 에이로봇이 AI 플랫폼에 앨리스의 모델을 주고 말로 걷게 해달라고 지시하자 9분 만에 로봇이 걷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코드는 한 줄도 짜지 않았다고 한다. 에이로봇이 액추에이터를 직접 만들어 소비자가를 4만7천 달러까지 낮춘 것도 이런 판단에서다.
엄 대표는 무대에 줄지어 선 휴머노이드 23대 가운데 한국산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짚었다. 초저가 중국 휴머노이드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지금 기조가 유지된다면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전트 설계와 AI 도입의 J커브

'지능의 연결과 미래' 세션에서 멀티 에이전트 기반 바이브 코딩 기업 위븐의 김정환 대표는 시행착오를 공유했다. 같은 결과물을 범용 AI 서비스로 만들면 2,000원에 15분이면 됐다. 그러나 멀티 에이전트로 나눠 맡기자 1시간 반이 걸렸고 비용은 10만 원까지 불어났다. 김 대표는 “실제로 해보니 오류율이 급증했고 결과물이 처참했다”고 돌아봤다.
원인은 일을 넘겨주는 순간에 있었다. 각 에이전트의 점수가 단계마다 곱해지고, 맥락은 압축돼 넘어갔기 때문이다. 구글 연구진 연구에서 AI 하나가 혼자 일할 때의 오류를 1로 놓으면 조율 없는 멀티 에이전트의 오류는 17.2배였고, 오케스트레이터가 조율하면 4.4배였다.
위븐은 제작은 싱글, 검수는 멀티로 나누는 구조로 바꿨다. 웹사이트 한 장의 원가는 7,000~8,000원에서 1,500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김 대표는 “실제 서비스까지 가지 못한 AI 에이전트 사업들의 진짜 원인은 AI의 능력보다 설계와 오케스트레이션의 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오삼일 팀장은 한국은행이 지난해 근로자 5,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AI 활용 조사를 분석해 발표했다. 업무에 AI를 쓰는 근로자는 51.8%였고, 꾸준히 쓰는 사람은 3분의 1 정도였다. 20% 이상 의미 있게 시간을 줄여주는 업무는 전체의 5% 정도였다.
AI로 아낀 시간과 생산량 증가는 평균적으로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고, 자영업자·전문직은 예외였다. 오 팀장은 아낀 시간이 일터에서 상당 부분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병목은 워크플로우와 조직 변화에 있다는 분석이고, 그는 “아직 J커브의 밑단에 있다”고 표현했다.
인간 쪽의 질문: 뇌공학과 교육

'지능의 인문학' 세션에서 임창환 한양대 뇌공학연구센터장은 “기술은 인간의 부족함에서 시작됐다”며 AI를 인간의 불완전함을 메우는 동반자로 규정했다. 선제적으로 돕는 AI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도 소개했다. 뉴럴링크 칩은 30명가량에게 이식됐다고 전했다. 한국은 “다소 뒤처져 있지만 내년부터 대형 연구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주 연세대 AI에듀테크센터장은 연구를 통해 “학습자의 감정까지 97% 이상의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학생이 챗GPT와 함께한 과제에서 AI가 혼자 수행한 비율은 81%였는데, 학생 절반 이상은 'AI와 협력했다'고 답했다. 질문하는 AI가 좋은 교육용 AI라는 것이 그의 제언이다.
김 센터장은 교(敎)와 육(育)을 구분했다. “AI는 실패해 본 적도, 눈물을 흘려본 적도 없습니다. 아무리 발전해도 가르치는 건 잘할 수 있지만, 기르는 건 안 된다”는 것이다. 여덟 연사의 발표를 종합하면, 초자율 사회의 조건은 AI를 얼마나 똑똑하게 만드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지킬지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고, 일하고 배우는 방식을 바꿀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