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전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은 2만2000대를 넘어 전년 동기 대비 약 300% 성장했고, 연말까지 누적 출하량은 5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용도별 비중을 보면 엔터테인먼트·데이터 생산용이 6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지능형 제조는 13%, 창고·물류는 5%에 그친다. 화려한 출하량 수치와 달리 실제 산업 현장 도입은 아직 초기 단계라는 뜻이다.
이 간극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데이터 수집 체계다.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량 1위 기업 애지봇(AGIBOT)의 국내 공식 파트너인 화인로보틱스 김묵현 대표는 상하이 공장을 직접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드웨어 경쟁이 아니라 실물 데이터를 쌓는 구조가 경쟁력의 실체라고 짚었다.
데이터가 갈라놓은 경쟁력
애지봇은 2026년 상반기 약 9700대를 출하해 점유율 43%로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경쟁력의 배경에는 상하이 AI 랩, 상하이혁신연구원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대규모 데이터 수집 시설 ‘AgiBot World Colosseo’가 있다. 2024년 9월부터 가동된 이 시설은 4000㎡ 이상 공간에 동일 사양 로봇 100대를 배치해 217개 작업, 106개 장면에서 100만1552건의 궤적, 총 2976시간에 달하는 데이터를 축적했다. 여기에 소프트웨어가 더해진다. 애지봇의 개발 플랫폼 지니 스튜디오(Genie Studio)는 로봇 작업을 드래그 앤 드롭으로 짜고 Sim2Real 시뮬레이션에서 검증을 거친 뒤 실물 로봇에 배포하는 구조로, 새 업무가 생길 때마다 로봇을 새로 만들지 않고 하나의 소프트웨어 스택 위에서 워크플로만 구성한다.

김 대표는 “실제로 현장에서 데이터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공정의 한 라인에서 사람을 빼고 로봇을 넣어야 하는데 보통의 기업에서는 로스가 생기는 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1세기경제보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실물 로봇 데이터가 시간당 500~1000위안에 거래되는 시장까지 형성돼 있다. 애지봇은 지난 4월 17일 상하이에서 연 파트너 컨퍼런스에서 ‘배포 원년’을 선언하고 표준화 7대 솔루션을 공개했으며, 실제로 스포츠 브랜드 안타(Anta) 매장에서는 방문객이 20% 늘었고 광저우 지하철은 운영비가 13%,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은 청소비용이 18% 줄어드는 실증 성과를 냈다. 롱치어테크놀로지 난창 공장에서는 지난 6월 6일간 실증을 공개해 64시간 넘게 연속 가동하며 6만4828건의 작업을 처리하고 태블릿 1만7625대를 생산, 성공률 99.99%를 기록했다.
한국의 국산화 드라이브, 남은 과제는 인력
한국 정부도 2030년까지 휴머노이드 생태계에 2조3000억원, 피지컬 AI 실증에 2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웠다. 내년 시작 예산만 6000억원 규모다. 핵심 부품 국산화율은 현재 45%에서 2030년 8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며, 국산 휴머노이드 공공구매도 내년 250대에서 2030년 1080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약 2만명 규모의 AI 인재 양성 목표도 제시됐다.
문제는 부품 국산화만으로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로봇을 다룰 인력과 데이터 확보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산화율 수치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김 대표는 “앞서 나간 기술을 먼저 사서 써봐야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고, 직접 만드는 단계에 갔을 때도 그 경험이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현장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확보하려면 생산 라인의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 비용 문제가 따르는 만큼, 해외에서 이미 확보된 범용 데이터를 활용하고 국내에 필수적인 데이터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화인로보틱스는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국내 교육 현장을 겨냥한 조립형 교육용 휴머노이드 ‘X2 EDU’를 2026년 9월 1일 국내에 출시했다. 자유도 29개, 키 130㎝, 무게 35㎏에 RK3588 컨트롤러를 탑재했으며 최대 보행속도는 1.8m/s다. 가격은 경쟁사의 유사 사양 대비 20~30% 저렴하게 책정됐고, 두 사람이 하루 8시간씩 이틀에 걸쳐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학습 로드맵은 부품 구조 이해부터 Sim-to-Real 연구까지 7단계로 구성되며, 화인로보틱스 CS팀은 오는 10월 로봇 핸드 관련 추가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화인로보틱스는 애지봇 판매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국내 주요 대기업 다수에 제품을 공급했고, 올해 매출은 60억~70억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가 2009년 세운 광학·머신비전 회사 화인스텍이 이 사업의 모태다.
김 대표는 국내 로봇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시장 전체가 커지고 참여 기업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출하량이 늘어도 산업 현장 도입 비중이 낮은 지금 단계에서는, 부품 국산화와 예산 투입만큼이나 데이터와 인력이라는 기반을 함께 쌓는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