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의 무게추가 벤치마크 점수에서 현장 검증으로 옮겨가고 있다. 생성형 AI가 촉발한 성능 경쟁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산업계에서는 실제 공정과 데이터에 얼마나 밀착했는지가 AI 경쟁력을 가르는 새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키나락스가 2026년 9월 3일 서울 웨스틴 조선 파르나스에서 연 산업 AI 컨퍼런스 'ATTENTION 2026'은 이런 흐름을 압축해 보여준 자리였다. 마키나락스, KAIST, 한국앤컴퍼니그룹, HD현대, 디바이스 인사이트가 오전 키노트에 나섰고, 오후에는 AI OS·산업 AI·국방 AI 3개 트랙에서 15개 세션과 AI 반도체·AI 인프라·산업 AI 솔루션 전시가 병행됐다.
벤치마크가 놓친 것
이번 컨퍼런스가 던진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AI 성능 지표는 계속 오르는데, 왜 기업 생산성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윤성호 마키나락스 대표는 “AI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왜 기업의 생산성은 기대만큼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미국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최근 3년간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를 인용했다. 이 조사에서 경영진의 약 90%는 AI가 생산성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답했다.
윤 대표는 맥도날드의 AI 드라이브스루 사례를 들며 “AI가 현장에서 동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벤치마크 수치가 아무리 높아도 실제 매장이라는 변수 많은 환경에서는 무력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벤치마크 성능이 높다고 기업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현장입니다”라고 정리했다.

생성형 AI 다음은 '피지컬 AI'
이날 발표에서 공통으로 제시된 다음 단계는 '피지컬 AI'였다. 산업 현장에는 표준 벤치마크가 다루지 않는 예외적이고 드문 상황, 즉 '롱테일' 문제가 많아 결국 현장 데이터와 경험이 성능을 좌우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등장한 개념이 '기업 AI 주권(Enterprise AI Sovereignty)'이다. 기업이 축적한 데이터와 노하우를 AI와 연결해 자산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AI를 외부에서 가져다 쓰는 도구가 아니라 기업 고유의 축적물로 다뤄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역할 재편도 함께 제시됐다. 반복적인 분석과 계산은 AI가 맡고, 사람은 판단과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산업 현장의 업무 구조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업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
마키나락스는 자체 AI 운영체제 '런웨이'와 현장에 직접 붙어 일하는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조직을 통해 기업마다 다른 데이터와 AI를 연결하는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벤치마크 성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각 기업의 실제 데이터 구조에 맞춰 AI를 붙이는 방식이다.
이날 키노트에서는 이런 접근을 실제로 적용한 기업 사례도 공개됐다. 김성진 한국앤컴퍼니그룹 전무(CDO·CIO)는 R&D·생산·물류·재무 데이터를 연결해 현업이 AI를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타이어 패턴을 생성하는 AI와 수요예측 모델이 대표적인 적용 사례로 소개됐다. 김영옥 HD현대 상무(CAIO)는 설계·생산·품질·안전 데이터를 AI에 연결하는 'AI-Ready Data' 체계를 기반으로 공통 AI 플랫폼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D현대는 이를 통해 자율형 조선소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기업의 사례는 방향이 같다. AI를 새로 도입하는 것보다, 기존에 쌓아온 기업 내부 데이터를 AI와 얼마나 촘촘히 연결하느냐가 산업 현장에서의 성패를 가른다는 점이다. 벤치마크 점수 경쟁에서 현장 검증 경쟁으로 넘어가는 산업 AI의 흐름이, 이번 컨퍼런스에 모인 기업들의 발표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