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정화 시장의 오랜 전제는 ‘필터’였다. 헤파필터가 먼지를 걸러내고, 사용자가 주기적으로 이를 교체하는 방식이 표준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공기질이 나쁜 환경일수록 필터 관리 부담과 교체 폐기물 문제가 커진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필터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기술을 찾는 흐름이 산업 현장과 가정용 시장 양쪽에서 동시에 관찰되고 있다. 워터베이션 정윤영 대표가 개발한 물 기반 공기정화 기술 WVG(Water Volume Grid)는 이 흐름 위에서 나온 제품 중 하나다.

필터를 버리고 물로 씻는다는 발상
WVG는 물을 미세 분사해 오염물질을 포집한 뒤, 오염된 물은 버리고 새 물을 채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윤영 대표는 “공기가 좋지 않은 환경일수록 필터 관리가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지를 계속 필터 안에 쌓아두기보다 비가 공기를 씻어내듯 물로 관리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습니다”라고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기술은 큐(CUE) 에어워셔라는 제품으로 구현됐고, 완성까지 수백 번의 시제품 제작과 국내 제조 노하우가 투입됐다.
기술적으로 까다로웠던 지점은 작은 힘으로도 물을 안정적으로 미세 분사하는 것이었다. 정 대표는 “물과 공기가 충분히 만나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라고 밝혔다.
헤파필터와 경쟁이 아닌 역할 분담
물 기반 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기존 필터 시장이 곧바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헤파필터가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 있습니다. 워터베이션은 기존 기술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을 활용한 또 하나의 공기 관리 방식을 제안하는 것입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시장은 필터와 물 기반 기술을 이분법적으로 대체 관계로 보기보다, 환경과 용도에 따라 선택지가 늘어나는 구도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가정용에서 산업 현장으로 번지는 수요
워터베이션의 사업 영역 확장 경로도 시장 흐름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가정용 시장을 겨냥했지만, 공장·제조시설 등 산업 현장에서 먼지와 오염물질 관리에 대한 수요가 확인되면서 사업 영역이 산업용 공기정화, 공조(HVAC) 시스템, 반도체 집진 장치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필터 교체 주기가 짧고 관리 비용이 큰 산업 현장일수록 물 기반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이 이러한 확장의 배경으로 꼽힌다.
해외에서 먼저 검증받은 시장 반응
워터베이션은 국내 출시에 앞서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 먼저 소비자 반응을 검증하는 경로를 택했다. 그 결과 약 54만 달러(약 7억 원)의 펀딩을 달성했다. 정 대표는 이 과정에 대해 “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시장의 반응까지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지도 없는 한국 스타트업 제품을 해외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선뜻 구매할지, 필터 대신 물로 공기를 씻는 새로운 개념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내부적으로도 긴장감이 컸습니다”라고 전했다.
큐 에어워셔는 오는 9월 국내에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워터베이션은 자체 생산라인 구축과 함께, 필터를 얼마나 줄였고 그 결과 어떤 환경적 효과를 만들었는지를 데이터로 보여주는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단순히 공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제품을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과 공공기관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공기를 관리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필터 교체 중심이었던 공기정화 시장에 물 기반 기술이 하나의 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산업 현장의 반복 수요와 국내 출시 이후의 반응이 함께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