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한때 신제품을 짧게 선보이고 파는 임시 판매 공간이었던 팝업스토어가 이제는 브랜드가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서울 성수동이다. 성수역, 뚝섬역, 서울숲 일대에는 패션과 뷰티를 넘어 음악, 문구, 식음료,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브랜드 팝업이 몰리고 있다.

문구·패션이 만드는 국경 없는 큐레이션
2025년 4월 출범한 로컬 큐레이션 플랫폼 성수동고릴라(고릴라디스트릭트)는 매달 성수동 팝업 일정을 기간·위치·예약 방식별로 정리해 매일 업데이트하는 ‘월간팝업BOOK’을 공개해왔다. 2026년 9월호에는 서울, 도쿄, 싱가포르, 미국 오리건 등 여러 나라의 콘텐츠가 한 동네에 집결하는 모습이 담겼다. 29CM와 일본 로프트(LOFT)가 함께 여는 ‘페이지 투 페이지스(Page to Pages)’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운영되며 한국과 일본의 문구·라이프스타일 브랜드 39개가 참여한다.
패션 분야에서는 싱가포르패션협회가 주관하는 ‘싱가포르: 셀렉츠(Singapore: Selects)’가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린다. 쫀(ZZON), 아케이드, 사브리나 고, 영 헝그리 프리 등 싱가포르 브랜드 18개가 참여하는 이 행사는 서울을 첫 개최지로 선정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는 서울패션위크와 프리즈 서울 일정이 이어져, 해외 브랜드가 국내 진출 시점을 국내 대형 행사에 맞춰 조율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음악·여행 콘텐츠가 더해진 체험형 팝업
음악 분야에서는 스포티파이가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스포티파이 하우스 서울’을 운영한다. 9월 10일부터 12일까지는 앤더슨씨, 디플로, 라이즈, 리센느, 이브, 잔나비, 혁오, 실리카겔, 다이나믹 듀오 등이 참여하는 공연이 진행돼, 단순 브랜드 전시가 아니라 체험형 콘텐츠로 구성됐다. 여행 분야에서는 오리건관광청이 파사드 서울숲에서 정진운 사진전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의 첫 장면은?’을 9월 2일부터 20일까지 연다. 관광청이 미국 지역 브랜드 콘텐츠를 사진전 형태로 국내에 소개한다는 점에서, 여행 산업 역시 성수동을 체험 마케팅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음료·뷰티까지 확산되는 팝업 전략
식음료 분야에서는 하겐다즈가 9월 5일부터 ‘더 하겐 크루즈(The Haagen-Cruise)’를 운영하며 벨지안 초콜릿을 포함한 6가지 맛을 선보인다. 뷰티 분야에서도 오프라코스메틱의 ‘오프라 하이라이터 스쿨’, SK-II의 ‘Lock in Youth’, 구달의 ‘귤메달 청귤 마켓’, 퍼퓨라운지의 ‘무화과의 계절’ 등이 함께 진행된다. 이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팝업이 확산되는 것은, 브랜드들이 짧은 기간의 판매 성과보다 방문객이 머무는 동안의 경험 자체를 마케팅 자산으로 삼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승훈 성수동고릴라 대표는 “패션과 뷰티에서 라이프스타일과 컬처로 성수를 찾는 글로벌 브랜드의 분야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며 “팝업스토어와 새롭게 문을 여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성수동에서 세계 각지의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수동에 모이는 팝업의 국적과 업종이 다양해질수록, 이 동네는 개별 브랜드의 판매 채널이 아니라 여러 산업의 트렌드가 교차하는 시험장으로서의 성격을 키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