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을 이끄는 GLP-1 계열 약물의 다음 경쟁축은 신약 물질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편하게 투여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세마글루타이드, 트리제파타이드 등 GLP-1 계열 치료제는 현재 대부분 주 1회 자가주사 방식으로 처방되는데, 투여 간격을 늘려 환자의 주사 부담을 줄이려는 장기지속형 약물전달시스템(DDS) 기술이 이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레제피온이 개발 중인 장기지속형 약물전달 플랫폼 ‘RevoNMT’도 이 흐름 위에 있는 기술이다.

방출 속도를 다단계로 조절하는 기술
RevoNMT는 약물을 나노입자로 만들고 서서히 분해되는 물질에 넣은 뒤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나노입자와 미립구, 하이드로겔을 결합해 약물이 체내에서 방출되는 속도를 다단계로 정교하게 제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기술을 처음 적용하는 대상이 GLP-1 계열 비만·당뇨 치료제로, 목표는 주 1회 투여를 월 1회로 늘려 환자의 치료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다.
레제피온이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약물 함량을 25% 이상 높인 조건에서도 투여 초기 24시간 동안 방출량은 2~3% 수준으로 억제됐고, 4주 이상 지속적인 방출이 확인됐다. 제조 과정에서 원료 손실을 10% 이하로 낮출 가능성도 함께 확인했다. 조재평 레제피온 대표는 “약이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방출되는 모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의약품으로 만들려면 생산할 때마다 일정한 범위 안에서 같은 품질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연구할 때부터 생산과 허가까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25년 제형 연구가 향하는 곳은 신약이 아닌 플랫폼
조재평 대표는 약 25년간 DDS·제형 연구를 해온 인물이다. 그는 “연구를 하다 보면 빠르게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생깁니다. 그런데 제품을 만들려면 밑에서부터 하나씩 쌓아야 합니다. 생산했을 때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약물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허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까지 봐야 하죠. 저는 그런 실질적인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라며 제품화 관점을 연구 초기부터 반영해온 배경을 설명했다.

레제피온이 지향하는 방향은 GLP-1이라는 특정 신약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약물에 적용 가능한 플랫폼 기업이 되는 것이다. 조 대표는 “신약 물질 자체를 만드는 것만이 의약품 개발의 전부는 아닙니다. 좋은 약물이 있다면 환자가 더 편하게 투여하면서 부작용 부담을 낮추고 치료 효과를 최대한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단순한 연구보다 실제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을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체 임상 대신 기술이전으로 향하는 사업화 경로
레제피온은 자체 임상에 뛰어들기보다 비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뒤 기술이전·공동개발을 추진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주요 동물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재현성 확보와 원료 손실 최소화 등 제품화·생산 관점을 연구 초기부터 함께 고려하는 것도 이 같은 사업화 전략과 맞닿아 있다.
레제피온은 현재 시드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다. 확보한 자금은 비임상 연구와 생산공정 확대, 기술이전을 위한 데이터 구축에 쓰일 예정이다. GLP-1 시장이 커질수록 투여 편의성을 높이는 DDS 기술의 가치도 함께 주목받을 것으로 보이며, 레제피온의 다음 행보는 동물실험 결과와 시드 투자 마무리 여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