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스타트업이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C레벨급 전문성을 정규 채용으로 조달하기는 쉽지 않다. 은퇴한 시니어 전문가들의 경험이 활용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스타트업 인력난과 맞닿아 있는 문제다. 이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니어 전문가 경험을 구독형 서비스로 연결하는 모델이 등장했다. 2024년 10월 설립된 비사이드미가 운영하는 ‘리라랩’은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만큼만 전문가 경험을 구독하도록 설계된 서비스다.
강민정 비사이드미 대표는 “선배님들이 은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바로 그 경험을 필요로 하고 있었어요. 이 두 그룹을 연결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봤습니다.”라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AI 진단이 만드는 매칭 구조
리라랩의 핵심은 AI 기반 기업진단 시스템이다. 기업이 겪는 문제를 분석해 필요한 경험과 역량을 도출하고, 이에 맞는 전문가 3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매칭이 이뤄진다. 기업진단부터 전문가 3명 추천까지는 무료로 제공되며, 이후 기업이 전문가를 선택하면 1시간 온라인 미팅을 거쳐 실제 협업 여부를 결정한다.
강 대표는 “기업진단 리포트만으로는 기업이 처한 상황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와 직접 대화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초기 단계에서 기업이 실제로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최대한 깊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문가를 연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진단 화면에서는 목표와 기한, 멘토링 방식, 희망 전문가 유형 등을 직접 입력할 수 있다.

성장 단계별로 갈라지는 구독 형태
리라랩이 제공하는 전문가 연결 형태는 기업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 짧게는 1~4회로 끝나는 단기 컨설팅부터, 통상 4~12주간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 조직에 임원급 역할을 파트타임으로 투입하는 Fractional C-Level, 1~12개월 동안 공백 인력을 대체하는 대체 인력 활용, 여러 전문가가 팀을 이뤄 투입되는 전문가 프로젝트팀까지 유형이 다양하다. 실제 사례로 한 커머스 기업은 영업본부장급 전문가를 월 200만원 수준으로 구독해 약 3개월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강 대표는 “초기 스타트업이 경험 많은 C레벨을 필요로 하더라도 직접 채용하기는 쉽지 않다”며 “저희도 직접 전문가를 활용해보면서 필요한 역할과 경험을 구독하는 것이 실제 회사 운영과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전문성이 달라진다는 점을 서비스 구조 자체가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 풀의 확장과 자문 이후의 연결
서비스 초기 약 30명이었던 전문가 풀은 현재 11개 분야에서 약 120명 규모로 늘었다. 강 대표는 “저희가 실제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경험한 분들을 중심으로 전문가를 모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상무급 이상 임원이나 대표, C레벨을 경험한 분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참여하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비사이드미는 2026년 하반기까지 전문가 풀을 300명 규모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리라랩은 자문에서 그치지 않고 실행까지 연결하는 구조도 만들고 있다. 강 대표는 “기업에서는 자문을 받고 나면 다시 실행할 업체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이 원한다면 자문에서 끝내지 않고 실제 수행까지 연결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K뷰티, 패션, 글로벌 영업, IT, 사업계획 등 각자 분야에서 세미나와 워크숍을 운영하며 경험을 새로운 서비스 형태로 확장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강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사업을 하다가 ‘이 부분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자연스럽게 ‘리라랩에 그 분야 전문가가 있지’라고 떠올렸으면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시니어 전문가들이 기업이 막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솔루션이 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비사이드미는 향후 투자와 멘토링 중심의 기존 액셀러레이팅에 전문가 실무 역량을 결합한 ‘브랜드 액셀러레이터(BRAND.LAB)’로 사업을 확장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 채용도 자문도 아닌 구독이라는 형태가 시니어 인력과 스타트업 사이의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