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명이 넘는 인구를 앞세운 인도 시장 진출 담론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반복돼 왔다. 그러나 크로스보더 액셀러레이터 유니콘인큐베이터가 9년간 축적한 데이터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2017년 설립 이후 60여 개사를 지원했지만,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현지 사업을 지속하는 기업은 약 30%에 그친다. 규모가 큰 시장에 진입하는 것과 그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유니콘인큐베이터 김진아 대표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선발 기준과 협업 모델 자체를 바꿔왔다. 올해 8기를 맞은 배치 프로그램은 창업 초기 기업보다 국내에서 사업화 경험을 갖춘 성장 단계 기업을 선발 대상으로 조정했고, C레벨의 직접 참여 여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현지 의사결정 속도가 사업 성패를 가르는 인도 시장의 특성상, 대표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조직은 기회를 놓치기 쉽다는 판단에서다.
기술과 영업력을 나누는 협업 모델
2026년 5월 25일 뉴델리에서 출범한 ‘테크 상감(Tech Sangam)’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새로운 협업 구조다. 한국 기업이 기술을 모두 직접 판매하려 하기보다, 기술력은 한국이 갖고 시장 접근과 영업은 인도 인재가 맡는 역할 분담 모델이다. 1기에는 델타엑스, 비주얼캠프, 유디임팩트, 서울랩스, 링키스 등 5개사가 참여했다. 김 대표는 “테크 상감은 단순한 비즈니스 교환이 아니라 협력적 문제 해결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의 세계적인 기술 정밀성과 인도 시장의 대규모 수요를 연결해 상업적 확장이 지역사회의 변화와 함께 갈 수 있는 국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모델을 뒷받침하는 인재 축이 ‘테크 마르와리(Tech Marwari)’다. 기술과 시장을 함께 이해하는 현지 영업 인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 IIT 칸푸르·델리·조드푸르·로파 등 공과대학 네트워크와 FICCI, CII, 무역협회, 벤처기업협회 등 경제단체 네트워크를 함께 활용한다. 2025년에는 IIT 델리, 타밀나두와 각각 MoU를 체결하며 협력 기반을 넓혔고, 2026년 4월에는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에도 참여했다. 9년간 진행한 인도 고객사 미팅은 200건이 넘고, 투자의향서와 실증을 포함한 협약·계약은 60건에 이른다.

인구가 아니라 정책과 지역 구조를 봐야 한다
김 대표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지점은 인도 시장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다. 그는 “인도의 인구보다 정책을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인도 시장을 모두 가져오려고 하기보다 플랫폼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면 그 위에서 움직일 사람은 인도에 얼마든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도는 마하라슈트라, 하이데라바드, 안드라프라데시 등 지역마다 산업 구조와 소비시장이 다르게 형성돼 있어, 인구 규모 하나로 접근 전략을 세우는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진입 방식에서도 초기 투자보다는 PoC와 IP 인라이선싱 같은 단계적 실증 접근이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 규모를 먼저 확보하려는 접근보다, 기술을 현지에서 검증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을 거친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에 더 가까이 갔다는 것이다. 이는 30%라는 지속률 수치가 만들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한류가 바꾼 진입 조건
시장 구조 못지않게 최근 몇 년간 달라진 변수는 한국 기업에 대한 인지도다. 김 대표는 “인도에서는 BTS를 모르면 부모 자격이 없다고 할 정도”라며 한류 확산이 현지에서 갖는 영향력을 언급했다. 과거에는 한국 기업을 소개할 때 국가 자체를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런 단계 없이 곧바로 기술과 제품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까지의 시간을 줄여주는 요인이지만, 그 이후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정책 이해와 현지 파트너십의 질에 달려 있다는 것이 유니콘인큐베이터가 9년간 확인한 결론이다.
유니콘인큐베이터는 기업과 기술, 현지 인재를 매칭하는 AI 시스템을 향후 2~3년 안에 온라인 플랫폼 형태로 구축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200건 이상의 미팅과 60건의 협약·계약, 60여 개사의 지원 경험이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구가 아닌 정책과 산업구조를 축으로 삼는 매칭 구조를 시스템화하겠다는 방향이다. 인도 진출을 고민하는 기업들에게 남는 질문은 결국 시장의 크기가 아니라, 그 시장의 규칙을 얼마나 정확히 읽어냈는가로 좁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