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생성형 AI 시장의 화두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을 지배한 질문이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면, 이제 업계는 “실제 업무를 어디까지 맡길 수 있는가”로 논의의 축을 옮기고 있다. 데이터 클라우드 기업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는 2026년 8월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스노우플레이크 월드 투어 서울 2026’에서 이 변화를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Agentic Enterprise)’라는 개념으로 정리해 제시했다. 국내 기업 17개사가 참여한 이 행사에서는 AI 에이전트가 기업 데이터와 시스템에 실제로 접근해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부상한 신원·접근권한·보안·비용 통제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할 수 있는가’에서 ‘맡길 수 있는가’로
발라 카시비스와나탄 스노우플레이크 AI 및 개발자 경험 담당 부사장은 지난 1년간 기업들이 가장 많이 고민한 문제로 “AI를 어떻게 실무에 적용할 것인가”를 꼽았다. 이 질문은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 “AI에게 어디까지 맡길 수 있을까”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게 이번 행사에서 확인된 흐름이다. 실제로 티냅스 강민성 대표는 현장에서 이 질문을 그대로 던지며 AI 에이전트 도입 과정에서 기업들이 마주하는 현실적 고민을 짚었다.

AI 에이전트가 단순 응답을 넘어 기업 시스템에 직접 접근해 업무를 처리하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시장의 관심사도 성능 자체보다 통제 가능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제시된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 개념은 데이터·컨텍스트 이해, 모델 선택, 시스템 연결, 통합 컨트롤 플레인이라는 네 가지 축으로 구성됐다. 이는 개별 기능 경쟁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기업 환경에 안전하게 통합하는 구조 전체를 다루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시장이 요구하는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통제와 거버넌스로 이동하는 기술 경쟁
기술적으로는 코텍스 AI 게이트웨이(Cortex AI Gateway)가 에이전트의 신원·접근권한·보안·비용을 통합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 최근 인수한 나토마(Noma)의 기술이 스노우플레이크 호라이즌과 결합되면서 에이전트 신원과 접근 거버넌스 기능이 한층 강화됐다. AI 에이전트가 늘어날수록 발생하는 비용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별 에이전트 단위로 예산을 설정할 수 있는 기능도 마련됐으며, 상용·오픈소스를 아우르는 모델 선택의 유연성을 확보해 특정 기술에 종속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도 함께 제시됐다.
업무 자동화를 위한 도구로는 스노우플레이크 코워크(Snowflake CoWork)와 스노우플레이크 코코(Snowflake CoCo)가 새롭게 공개됐다. 이 같은 도구들은 에이전트가 실제 업무 흐름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결국 시장의 기술 경쟁 축이 ‘더 똑똑한 모델’에서 ‘더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체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국내 시장에서 확인되는 도입 확산
이 같은 흐름은 국내 기업들의 실제 도입 사례에서도 뒷받침된다. 스노우플레이크는 2021년 한국 지사 출범 이후 2025년까지 국내 매출이 약 18배 성장했고, 국내 고객 수는 같은 기간 10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이미 전년 동기 수준을 넘어섰으며, 국내 10대 그룹 중 8곳이 스노우플레이크를 이용하고 있다. 넥슨, 카카오, 토스를 비롯해 삼성, SK, CJ, LG, 신세계, 한화, 포스코, GS 등 국내 주요 기업과 톰슨로이터, 사노피, 언더아머, 캔바 등 글로벌 기업이 고객으로 언급됐다.
실제 업무 적용 사례로는 KB국민은행이 제시됐다. KB국민은행은 2026년까지 AI 에이전트를 약 300개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국내 기업들이 AI 에이전트를 실험 단계가 아니라 실제 업무 인프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개별 기능 도입을 넘어 조직 차원에서 에이전트 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가 제시한 ‘런타임 트러스트옵스(Runtime TrustOps)’ 개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업용 AI 시장의 경쟁 기준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업무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도입 확대와 은행권의 에이전트 운영 계획은 이 흐름이 이미 국내 시장에서도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