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협업툴 시장이 범용 협업 기능 경쟁을 넘어 산업별 업무 구조에 맞춘 버티컬 솔루션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글로벌 SaaS가 이미 장악한 시장에서 국산 B2B SaaS가 경쟁력을 확보할 지점은 기능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산업 현장의 업무 흐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있다는 판단이 그 배경이다. 협업툴 ‘잔디’를 운영하는 토스랩과 병원 운영 시스템 개발사 레이어드허브가 2026년 9월 13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아틀라스홀에서 피부·미용 의원 대상 행사 ‘Connect Beauty AtoZ’를 열고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연동 사례를 공개했다.

범용 협업툴, 산업별 문제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다
김대현 토스랩 대표는 “범용적인 내부 협업을 해결하는 것은 기존 서비스로 가능했지만, 각 산업별로 정말 풀고 싶은 문제들은 굉장히 다양했다”고 말했다. 잔디의 산업별 활용 패턴을 약 28개 산업군에 걸쳐 분석한 결과, 병원 산업에서 조직 규모와 잔디 활용도가 함께 성장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이는 병원 현장에서 협업툴이 단순한 사내 메신저를 넘어 실제 업무 처리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서준호 토스랩 CTO는 “여러 플랫폼을 개별적으로 운영하거나 여러 서비스를 중복해서 사용하면서도 효율이 높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0여 년 동안 조직 안의 소통을 연구해온 경험을 조직 밖의 소통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이번 연동이 조직 내부 협업 경험을 고객 접점 관리로 확장한 시도라고 밝혔다.

병원 현장의 진짜 문제는 기능이 아니라 데이터 단절
서민호 레이어드허브 대표는 병원 현장의 문제를 기능 부족이 아닌 시스템 간 단절로 진단했다. 그는 “좋은 프로그램은 많았지만 프로그램끼리 연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문의가 들어오면 확인하고, 예약에 다시 입력하고, 차트를 확인한 뒤 또 다른 시스템에 입력하는 과정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환자에게는 하나의 경험인데 병원에는 데이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시스템이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스템에 종속돼 있었다”는 것이 서민호 대표의 진단이다. 토스랩과 레이어드허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잔디톡과 레이뷰 CRM을 연동해 상담·예약·차트·원내 협업·고객관리 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상담 문의가 접수되면 예약, 차트, 원내 운영, 통계까지 이어지는 업무 데이터가 별도 입력 과정 없이 연결되는 구조다.

흩어진 데이터를 하나의 화면으로
서준호 CTO는 이번 연동의 방향성을 “고객들의 화면은 다르지만 우리의 화면은 같아야 한다”는 말로 정리했다. 병원마다 상담 채널과 운영 방식은 다르더라도, 그 데이터가 하나의 흐름 위에서 관리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개별 기능 추가가 아니라 산업 현장의 업무 구조 자체를 이해하고 연결점을 찾는 접근이라는 점에서, 범용 협업툴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서준호 CTO는 축적되는 데이터의 활용 방향도 언급했다. 그는 “앞으로 AI가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데이터”라며 “우리의 데이터를 어떻게 쌓아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AI 자체보다 그 기반이 되는 산업별 데이터의 축적을 우선 과제로 본 셈이다.
이번 사례는 국산 B2B SaaS가 글로벌 SaaS와 경쟁하는 지점이 기능 목록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 대한 이해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범용 협업툴로 시작한 잔디가 병원이라는 구체적 업무 환경 안에서 상담·예약·차트·고객관리를 잇는 흐름을 만든 것처럼, 다른 산업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버티컬화가 이어질지가 국산 협업툴 시장의 다음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