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성장 단계마다 마주치는 협상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초기에는 투자 유치 조건을 두고 벌이는 밀고 당기기였다면, 사업이 커질수록 M&A·대기업 파트너십·해외 계약 등 한 번의 판단이 회사의 방향을 바꾸는 협상이 늘어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벤처스퀘어는 2026년 9월 9일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OPEN UP: 강자를 움직이는 협상의 기술’을 열고, 가격을 깎는 흥정을 넘어 상대가 스스로 움직일 이유를 만들고 거래 이후의 관계까지 남기는 협상법을 다뤘다. 우앤파트너스 우준호 대표와 로가 하경수 대표가 연사로 나섰고,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가 패널 토크와 라이브 클리닉을 진행했다.
정보·시간·힘 — 협상을 움직이는 세 축
우준호 대표는 이랜드에서 15년간 재직하며 M&A 15건, 누적 13억달러 규모의 거래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상을 움직이는 요소를 정보·시간·힘 세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힘이 대안과 신뢰, 그리고 거래를 멈출 수 있는 판단에서 나온다고 짚었다. “좋은 조건을 요구하려면 그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멈출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협상력이 상대에게 매달리지 않을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그만둘 수 없는 사람에게는 협상력이 없다”고 덧붙이며, 협상 테이블 이전에 이미 승패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례로 그는 해외 기업이 계약 직전 약 10%의 추가 가격 인하를 요구했을 때, 거래 종료를 통보해 원래 조건으로 돌려놓은 경험을 소개했다. 재조정 요구 이후 원래 조건으로 복귀하기까지는 약 2주가 걸렸다고 한다. “협상을 잘하니까 가서 가격 좀 깎아주세요”라는 식의 요청이 스타트업 현장에서 흔히 나오지만, 실제 협상은 가격 하나를 두고 벌이는 밀당이 아니라 상대의 대안과 시간, 신뢰 관계 전체를 읽는 작업이라는 점이 이번 발표의 핵심이었다.
투자유치를 넘어선 관계 — 로가의 협상 원칙
하경수 로가 대표는 식물성 콜라겐 펩타이드 VC-H1을 개발한 로가의 성장 과정을 통해 협상을 관계의 문제로 풀어냈다. 로가는 2021년 원물과 제조 특허를 확보했고, 2022년 프랑스 SIAL 파리에서 원료 부문 혁신 대상을 받았다. 이후 2025년 연매출 250억원, 영업이익률 18%를 기록했고, 같은 해 8월 시리즈A로 110억원, 2026년 5월 시리즈B로 15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우준호 대표는 로가에 투자유치 자문을 넘어 직접 투자자로 참여했는데, 더 높은 밸류를 제시한 해외 투자자 대신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선택받은 사례로 소개됐다.

하경수 대표는 두 번의 폐업 경험과 농업 가정에서 자란 배경을 바탕으로 식물성 콜라겐 시장의 전제 자체에 질문을 던졌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은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움직일 이유를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자신이 정리한 협상 원칙 아홉 가지로 주도권·질문·본질·도움·맥락·증명·초대·시간·선택을 꼽았다. “노력으로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 해야 할 몫은 끝까지 다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협상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와 통제할 수 있는 태도 사이의 균형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패널 토크와 라이브 클리닉 — 현장의 협상 딜레마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가 진행한 패널 토크와 라이브 클리닉에서는 참석자들이 익명으로 제출한 사연을 두고 실제 협상 딜레마가 오갔다. 첫 대기업 고객이 30% 할인을 요구한 사례, 투자자가 애매한 답변으로 시간을 끄는 상황, 대기업이 무료 실증을 요구하는 경우 등이 다뤄졌다. 이는 스타트업이 성장 과정에서 되풀이해 마주치는 협상 유형들로, 가격 흥정에서 시작해 결국 관계의 지속 여부로 귀결된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두 연사가 제시한 협상 결과 판단 기준은 결국 하나의 공식으로 모인다 — ‘관계가 조건보다 크다’는 것이다. 하경수 대표는 “로가 덕분에 더 잘 살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며 “협상의 완성은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건강하고 주도적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조건을 얻어내는 순간의 승리보다 거래 이후에도 유지되는 신뢰가 스타트업 협상의 실질적 성과라는 인식이, 이날 현장을 관통한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