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와 K-뷰티가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키워가는 동안, K-의약품 수출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의약품 수출 구조 분석 및 수출경쟁력 강화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의약품 수출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2.7% 늘며 2016년 7억 4,000만 달러에서 2025년 8억 8,000만 달러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성장의 속을 들여다보면 물량은 늘었지만 몸값은 오히려 낮아진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 진단이다.

수출은 늘었지만, 가격은 오히려 깎였다
연구원은 수출 증가율을 물량·품목·가격 요인으로 분해해 이 구조를 드러냈다. 그 결과 물량 요인이 수출 증가에 기여한 비율은 130.7%에 달했지만, 품목 효과는 2.9%에 그쳤고 가격 효과는 -33.6%로 오히려 수출 증가를 갉아먹었다. 같은 기간 화장품 수출은 연평균 14.5%, 식품은 7.1%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의약품의 2.7%는 확연히 뒤처진 성장세다. 물량을 늘려 몸집을 키우는 동안, 단가와 제품 구성은 오히려 경쟁력을 잃어간 셈이다.
범용치료제 쏠림, 시장도 중저가로 이동
제품 포트폴리오의 변화는 이런 구조를 더 뚜렷하게 보여준다. 범용치료제 수출 비중은 2016년 68.1%에서 2025년 77.6%로 9.5%포인트 상승하며 오히려 집중도가 강화됐다. 반면 항생제 비중은 10.0%포인트, 호르몬제 비중은 0.1%포인트 각각 하락했다. 다양화가 아니라 특정 저부가가치 품목으로의 집중이 심화된 흐름이다.
수출 시장의 구조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중국·아세안·중남미 등 중소득시장 비중은 55.6%에서 60.9%로 늘었고, 고소득시장 비중은 43.4%에서 37.7%로 줄었다. 글로벌 의약품 수요가 고부가가치·고소득시장으로 이동하는 흐름과는 반대 방향이다. 김무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의약품은 K-푸드, K-뷰티처럼 우리 수출을 견인할 잠재력이 충분한 분야이지만 그간의 성장은 주로 범용 제품의 물량 확대에 기반해 왔다”고 짚었다.

전환의 방향: AI 생산성, 제품 차별화, 고소득시장
보고서가 제시하는 전환 방향은 세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는 제조·품질관리 단계에 AI를 도입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제약사의 연구개발 이후 공정에 AI를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제조 데이터 분석에 특화된 스타트업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는 지점이다.
둘째는 제형이나 복약 편의성 등에서의 제품 차별화이며, 이는 해외 인허가 지원과 맞물려야 실효성을 갖는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셋째는 고소득시장 진입을 위한 전주기 지원 체계와, 정부가 추진하는 K-소비재 수출동력화 정책과의 연계다. 김 연구원은 “제약사의 기술 고도화와 정부의 전주기 지원이 어우러진다면 세계시장에서 쉽게 대체되지 않는 K-의약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은 규모가 아니라 질이다. 지난 10년간 K-의약품은 수출액을 늘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성장을 지탱한 것은 물량 확대와 저가 시장 확장이었다. 물량 중심 성장의 한계가 뚜렷해진 지금, 제조 단계의 AI 도입과 제품 고부가가치화, 고소득시장 재진입이라는 세 축이 K-의약품 산업의 다음 10년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